2011-12-28
그라시아스 합창단, 지난 한 달간 33회 국내 공연 펼쳐…나머지 열한 달은 해외 무대에 올라 ‘프로 실력’ 뽐내
그라시아스 합창단 세종문화회관 공연. ⓒ 그라시아스합창단 제공
지난해 한 텔레비전 쇼에서 합창을 다루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던 합창의 기쁨과 감동을 사람들은 텔레비전 쇼를 통해 재발견했다. 텔레비전 쇼에 등장한 합창 대회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합창의 매력에 빠져서 자발적으로 합창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아마도 합창의 기쁨을 즐기는 자발적인 모임 중 공연 횟수로, 합창에 대한 애정으로 치면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12월 한 달 동안 이들은 무려 33회의 공연을 열고 있다. 5대 광역시부터 남해안, 동해안, 서해안에 있는 도시를 모두 훑고 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이름의 이 공연은 미국·영국·인도·호주·페루·태국 등 세계 30개국의 수많은 도시에서 무대에 오른다. 이들이 해마다 무대에 올리는 공연 횟수만 2백여 회에 달한다. 12월만 국내 활동에 치중하고 나머지 열한 달은 전세계를 누빈다. 이 정도의 공연 일정이면 살인적인 스케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꺼이 무대에 즐겁게 오른다.
이유는 ‘스스로가 즐겁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사를 부르면서 노래할 때 그때가 제일 행복하다.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매 순간 절절하게 감동이 느껴진다,”(박진영 합창단원), “내가 합창을 하면서도 내 귀에 4부 화성이 들리는 그 순간이 즐겁다. 고난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화성이 엄청나게 아프게 들리고, 사랑을 노래한 가사에서는 화성이 따뜻하게 들리는 등 각각의 노랫말에 따라 맞춤한 화성이 들려올 때 작곡가에게 새삼 감탄하게 된다.”(최혜미 합창단원)
지난 2000년 설립된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단원 대부분이 비성악 전공자임에도 보리스 아발리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교수를 지휘자로 영입하는 등 유명 음악인의 지도 아래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9년과 2010년에는 제주 국제합창제와 부산 국제합창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그라시아스 합창단장에 취임한 박은숙 단장은 “프로패셔널과 아마추어를 나누는 기준을, 이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느냐 아니냐로 놓고 보면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아마추어이다. 하지만 실력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프로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일에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것일까. 그는 “사과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애를 쓰지만 열매를 사과나무가 먹는 것은 아니다. 음악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천 번의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그 과실은 듣는 이의 몫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우리는 음악을 하고 그 음악이라는 메시지를 받는 청중이 좋아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5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음악학교 설립도 일궈내
박진영·최혜미·박은숙 단장(왼쪽부터). ⓒ 시사저널 전영기
아마추어 합창단으로 출발한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오디션으로 단원을 하나 둘씩 뽑으면서 40명의 단원으로 틀이 잡혔고 앙상블 수준으로 출발한 그라시아스 오케스트라는 50명의 단원을 갖춘, 규모 있는 오케스트라로 발전했다. 대전에 그라시아스음악학교가 지난 11월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늘리다 보니 거기까지 간 것이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사단법인 국제청소년연합의 후원을 통해 조금씩 가지를 키워가며 성장하고 있다.
박은숙 단장은 음악을 전공했지만 성악 전공은 아니다. 최근에는 지휘 공부도 병행하면서 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음악 공부를 하면서, 하면 할수록 음악에 문외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계의 슬픈 현실이지만 30대 이후에 발전하는 음악인이 많지 않다. 30대가 되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0대 이전은 기술을 익히는 것이지 음악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인생이 무르익고 생각이 성숙되어야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와 합창단이 발전을 멈추지 않고 작게나마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외 공연 통해 세계 각국 음악 유산 접하고 국내 들여오기도
이들은 공연을 통해서 합창이, 음악이, 언어를 뛰어넘는 본질적인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맡고 있는 박진영씨는 북미 지역 순회 공연을 할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캐나다에서 관중석에 앉은 꼬마가 1막 내내 무표정이었다. 어린 꼬마가 너무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 극적인 내용의 노래와 공연이 펼쳐지는 3막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가 펑펑 우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노래를 통해서도 마음이 통하는구나….”
이들은 노래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거꾸로 현지 공연 경험을 통해 세계 각국의 음악 유산을 접하고 이를 국내에 들여오기도 한다. 케냐나 가나, 아이티 등 흑인 문화권 공연도 자주 갖는 만큼 아프리칸 전통 민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이다. 박단장은 “아프리칸 송을 참 좋아한다. 멜로디가 대단히 아름답다. 이런 노래는 구전으로만 현지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쪽에는 아직 악보가 없다. 현지 공연을 통해 만난 사람을 통해 멜로디를 듣고 이를 채보해 우리가 편곡을 해서 정규 레퍼토리로 삼은 곡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레퍼토리로 준비하고 있는 곡은 5백곡 이상이다. 그중 아프리카 가나에서 전해지는 노래 10곡이 이런 과정을 통해 레퍼토리로 확보되었다. 또 현지에서 즉석 오디션을 통해 합창단원에 합류한 외국인 단원도 있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것이다.
“합창을 통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청중의 반응이 다 제각각이다. 그중 아프리카는 사람들의 반응이 제일 역동적이다. 노래가 자기들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뜨겁게 반응한다. 어느 날 공연에서는 청중이 스테이지로 뛰어올라 합창단원의 이마에 지폐를 딱 붙여주고 가기도 했다.”(최혜미 합창단원)
아마추어로 시작한 합창단원 중에는 전문 음악인의 지도 아래 기량이 계속 성장하며 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고 공연이 끝난 뒤 사인회를 가질 만큼 인기를 얻기도 했다. 최혜미씨나 박진영씨는 이런 합창 작업을 5년 뒤나 10년 뒤에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박단장도 “전문적인 직업 합창단으로서의 그림은 아직 그려보고 있지 않지만, 전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좋은 합창단을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유행 음악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합창 음악이 왜 생명이 긴 것일까. 박단장은 “합창 음악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문학도 가볍게 즐기는 문학이 있고, 깊이가 있어서 오랫동안 품고 새기는 문학이 있다. 합창 음악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깊이가 있다. 듣는 사람을 오랫동안 사로잡는 힘이 있다”라고 말했다. 합창이 주는 감동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솔로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전해주는 에너지와 합창단의 노래가 전해주는 에너지는 비교할 수가 없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렇다면 노래하기를 유독 좋아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합창곡은 어떤 곡일까. “기본적으로 가곡이나 합창곡 멜로디의 선이 뚜렷한 노래를 좋아한다.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같은 그런 곡 말이다.”
시사저널 김진령 기자 | jy@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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